[한중관계] 한국은 왜 중화체제에서 벗어나게 되었는가?
[서론] 한국은 중국을 배신했는가?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이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양국은 다양한 상호협력을 추진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양국의 이해가 증진되고 교류가 활발히 이뤄졌고, 과거 수 천 년 간 이어져온 양국의 유대관계가 서서히 복원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이데올로기적 단절로 비롯되어진 양국의 이질감이 여전히 극복되기 어려운 과제라는 현실을 새삼 재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현재 중국 내 한류 열풍을 계기로 한국의 대중문화가 중국에 폭넓게 소개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다양한 분야가 많은 중국인들로부터 호감을 사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양국 간의 불편한 이슈가 부각되어질 때마다 한국에 대한 반감, 곧 반한 감정이 일부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어 건전한 양국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곤 한다.
중국인들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정서가 정확히 어떠하며 무엇이 서로 간에 깊은 불신을 조장하는지 면밀히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유학생들이나 현지 거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려할만한 수준이라고들 한다.
개인적으로 중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중국 내 한국 유학생(留學生)들의 인터넷 블로그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곳에서 몇몇 유학생들이 중국 학생들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유학생이 중국 학생들의 면전비난에 대해 써 놓았는데, 마치 우리 학생들이 일본 유학생들에게 ‘왜 일본은 한국에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도 사과하지 않는가?’라고 다그치듯 질문하는 것처럼 그들도 ‘왜 한국은 중국을 버리고 미국에 붙었는가?’라고 묻는다고 한다.
사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아마도 학창시절 학교에서 배운 역사교과서나 언론 보도, 그리고 교양수준의 역사지식 정도만 있으면 얼마든지 반론을 펼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한 지식을 가진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막상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매우 난처하고 대답이 궁해질 것임에는 틀림없다.
거기에는 그들의 대국으로서의 우월의식이 바탕이 된, 배신한 자신들의 과거 속국을 향한 꾸지람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우리에게는 매우 상식적인, 그러나 입에 담기 힘든 공산주의 비판이 주된 해명의 내용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 오랜 세월동안 긍정적이건 혹은 부정적이건 간에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어 왔었던 한중 양국이 어떤 이유로 오늘날 현존하는 여러 대립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는가를 중국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몇 가지 관점에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본론] 한국은 왜 중화체제에서 벗어나게 되었는가?
- 청일전쟁의 패배와 조선에 대한 종주권의 포기
근대에 들어서면서 청나라는 외부적으로는 영국과의 두 차례의 전쟁에서 패하는 등 서양 열강들의 강력한 도전에 시달리고 내부적으로는 태평천국운동 같은 민란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국력이 급격히 쇠약해지게 된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중화제국의 질서가 완전히 붕괴되기에 이르는데 중국의 대외적 영향력을 크게 감소시킨 세 가지 사건(대만사건, 청불전쟁, 청일전쟁)은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건은 바로 청일전쟁이다.
1894년 조선에서 봉기한 동학 농민군을 둘러싸고 청과 일본이 각각 군대를 출병시켰는데 이 민란이 진압된 이후에도 양측은 철수하지 않고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려 하였고 이런 갈등이 도화선이 되어 청과 일본 간에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패배한 청은 여러 불평등한 요구를 일본으로부터 강요받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조선에 대한 종주권의 포기이다. 이것은 이후 조선/대한제국이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일본과 서양의 문화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어지는 공식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 청의 몰락과 중국의 분열
비록 조선이 일본의 수중으로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한반도 내의 중국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앞서 전술했듯이 중화제국은 19세기 말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도 중국대륙은 국민당과 공산당으로 나뉘어 내전을 벌이고 또 힘겨운 항일전쟁을 치루는 등 오랜 기간 혼란스럽고 실망스런 상황이 지속이 되었다. 이에 조선인들은 사분오열된 중국을 더 이상 대국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고 또한, 다시 의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하게 되었다.
- 일제의 조선강점과 공산주의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과거 중국에 의지했던 문화적 영향력이 상당부분 일본적인 것으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구지 일본의 강요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중국 문화가 서양의 그것에 비해 훨씬 낙후되었다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산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일본적 관점에서 중국을 대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중국을 객관적인 실체이자 때론 적으로 간주하기에 이르게 된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국 대륙에 거세게 불어 닥친 공산주의의 바람은 전통적인 조선 사회의 지식층으로부터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여전히 유교적 원리주의를 고수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낯선 서양의 이데올로기는 불온한 사상에 불과했으며 더욱이 이 같은 민중평등사상을 바탕으로 세운 정당이 대륙에서 득세하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을 것이다. 물론 조선에서도 좌익 세력들이 존재했었고 민중 운동 또한 적지는 않았지만, 친일 기득권세력의 거부감과 일제의 강력한 통제는 항일 전쟁을 벌이는 중국 공산당의 동조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방치 하지 않았다.
- 중국의 공산화와 한국전쟁, 그리고 미국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은 결국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하게 되고 과거의 전통적인 중국의 모습을 사회주의적으로 완전히 개조하게 되는데, 이는 기존의 사상적 이질성을 넘어서 체제적, 제도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우리와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해방 후 한반도 좌익의 지원세력이 되고 심지어 한반도의 남북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참전시켜 전세를 뒤바꾸어 놓음으로서 두고두고 한국민의 원한을 사기에 이른다.
미국은 한국의 건국 과정에서 신탁통치와 총선거 등에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그와 동시에 경제적, 문화적으로 한국 사회에 서구화라는 엄청난 변화를 던져 주었다. 그 결과 우리는 자본주의 부국(富國)이자 당시 초강대국이였던 미국에게 자의이건, 혹은 타의이건 간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중국과의 지속적인 갈등 관계를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된다.
- 문화대국으로서의 지위 상실
중국이라고 하면 유구한 역사와 한자, 유교, 높은 생활수준 등으로 상징되는 문화 대국의 이미지가 강했었는데 현대사를 거쳐 오면서 그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였고 더욱이 문화혁명의 시기에는 남아있던 전통적 가치마저 말살함으로서 한국민들은 그들에게서 더 이상의 친숙함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게다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냉전은 중국의 부정적 모습만을 서방의 시선을 통해 우리에게 비쳐지도록 했으며, 그 결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문화적으로도 낙후되었으며 잔인한 독재와 비현실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는 나라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 교류의 단절과 회복 그리고 갈등
한국전쟁 이후로 심각한 대립 관계를 유지했던 양국은 70년대 이념적 해빙 무드를 계기로 상호 개방을 천명하면서 그동안 단절되어져 왔었던 국가적 교류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민간 차원의 교류 또한 활발해져 갔지만, 오랜 기간 동안 전혀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양측의 이질감과 배타성은 정치, 경제, 역사, 문화적 사건 등이 간간히 불거질 때 마다 극단적인 형태로 고개를 들며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양국의 유대 관계를 대변하였다.
[결론] 한국은 중국을 배신하지 않았다.
이제 중국은 세계2위의 경제 대국이며 미국을 넘어설 수 있는 정치군사 대국화를 지향하고 있다. 서구 중심의 국제 질서에서 중국의 위상강화로 아시아의 영향력이 증대된다면 이는 반길 일이 되겠지만, 자칫 중국이 반미정서에만 편승하여 세과시(勢誇示)를 하려 든다면 결국 아시아의 분열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대국으로서의 인정을 받고 아시아의 리더를 자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국 고유의 것만이 아닌, 인류 보편적인 가치와 문화의 담지자(擔持者)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단지 힘만으로 과거 중화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발상은 주변국들과의 마찰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중국을 배신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앞서 제시한 변론들이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받아 들여 질런지는 미지수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상국(上國)의 체제’를 따르지 않고 배타성을 드러낸 것조차 비난하려 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물음을 어느 중국인에게 받게 된다면 아마 이렇게 대답하게 될 것 같다.
“한국은 결코 중국을 배신하지 않았으며 이는 중국인들이 스스로 전통적인 중국의 면모(面貌)를 저버림으로서 초래하게 된 당연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