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문학

[창작 희곡] 섬과 죄수

Fool On Hill 2015. 4. 7. 18:21



* 이글은 제가 1995년 PC통신 천리안의 문학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재수록 한 것입니다.


<섬과 죄수>


Situation ;  섬의 동편 끝 벼랑에는 죄수가 매달려 있다.

                   벼랑 꼭대기에 박힌 말뚝에 의지한 밧줄 한가닥이 죄수를 칭칭 감고 그의 목숨을 지탱하여 줄 뿐이다.

                   이따금씩 바람이 불면 죄수는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동틀 무렵 잠든 죄수에게 흰새 한마리가 날아 든다.)


흰새     (잠든 죄수를 깨우며) 여보세요, 여보세요......
죄수     (인상을 찡그리며 눈을 뜬다) 으응... 뭐, 뭐야... 또 새로군.
흰새      도대체 왜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거죠?
죄수      이젠 설명하기도 지쳤어. 그냥 벼랑에 붙은 바위 쯤으로 생각해죠.
흰새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요. 인간이 이렇게 벼랑에 매달려 있다니······.
              어쨌건 당신의 등뒤가 바로 제 보금자리였는데, 지금은 없어져 버렸군요.
죄수      그래... 대단히 미안하군.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곳에 오게 되어서...
흰새      그건 왜죠?
죄수      나도 몰라. 그냥 어느 날 눈을 떳는데 이곳으로 옮겨져 있더군.
흰새      그 전엔 어디서 살았나요?
죄수      글쎄... 통기억이 나질 않아.
흰새      여기 온지는 얼마나 됐죠?
죄수      오늘이 사흘젠가. 오늘은 바람이 잦군, 젠장.

              밤새 얼은 몸이 제대로 녹기도 전에 저 해는 절벽너머로 사라져 버린단 말이야.

              그런데 바람마저 세차게 부니.......
흰새      안됐군요, 그렇게 묶여 있다가는 결국 죽고 말거예요.
죄수      죽음... 그래 죽음, 나도 얼마 안가서 죽게 되리라는 것 쯤은 알고 있지.

              얼어 죽거나 굶어 죽거나 밧줄이 끊어져 죽거나...  아무튼 목숨은 하난데 방법은 여러가지군...

              어제 내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 고통없이 죽으려면 아무래도 밧줄을 끊어뜨리는게 제일 좋겠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흰새      그러지 말고 살아나는 방법을 연구해보지 그래요?
죄수      소용없어, 이렇게 손발까지 꽁꽁 묶여 있는걸. 게다가 살아난다 해도 별로 행복할 것같지 않은데.......
흰새      그건 왜죠?
죄수      네가 오기 전에 노란 새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인간세계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 하더군.

              세상이 온통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과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죽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로 가득찼다고 그러던데......
흰새      뭐라구요! 누가 그런 허튼 소리를?
죄수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사기, 교통사고, 암, AIDS, 부정부패, 시기, 무질서,

              질투, 모함, 교만, 나태, 슬픔, 고독, 절망, 죽음...... 뭐 이런 것이  매일같이 생긴다며?
흰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그런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예요.

              아름답고 고귀한 것들도 얼마든지 있지요. 그러니까......
죄수      어제 또 파란 샌가가 내게 와서 사랑이라는 걸 한참 설명해 주고 가더군.

              하지만 아무 것도 와닫질 않아.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왜 이곳에 매달려 있어야 하지?
흰새      그건 당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예요!
죄수      죄? 무슨 죄? 나는 아무 잘못도 없다구! 구지 따진다면 이 절벽에서 처음 눈을 떳었던 일이 되겠지.

              내가 절벽에 매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난 참 행복했었는데...  아니, 행복했었겠지.

              꿈 속에선 늘 세끼의 밥을 먹었고 따뜻한 이불에서 잠을 자고 한나절을  햇빛을 쬐었으니까.
흰새      그리구요?
죄수      그게 끝이야. 그것 말고 또 무슨 할일이 있지?
흰새      나는 철마다 보금자리를 옮겨 다니는데 그때마다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는 값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다운 것을 느끼고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실천하며......
죄수      그만! 도대체 그 ‘아름다운’이란게 뭐지?
흰새      그건 인간들의 삶을 보다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죠.
죄수      어짜피 자기네들이나 나나 죽기는 매한가지인데 그런 부질없는 일을 왜 한다지? 난 이해할수 없군.
흰새      으음... (혼자서 중얼거리며) 어쩔 수 없는 인간이군.


(멀리서 노란 새 한마리가 날아온다.)


노란새 어이, 절벽에 매달린 친구! 간밤에 잘있었나? 오늘도 내가 아주 쇼킹한 얘기들을 가지고 왔네.
죄수     그래? 그게 뭔가? 어서 이야기해봐!
노란새 가만 가만, 침착하라구! 그런데 친군 누군가? 아, 우리 섬에 흔해 빠진 흰새군.
흰새     당신이 이 사람에게 소식을 전해 준다는 노란 샌가요?
노란새 그래 맞아! 자네는 흰새 중에서 잘난 체 하기로 소문난 철새로군.  그래 여행은 잘다녀 왔는가?

             세상 구경을 많이 한다면서? 뭐 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주게나.

             난 늘 다른 새들에게 아주 쇼킹한 이야기만을 들려주는 아주 유용한 새지.
흰새     왜 사실을 사실로 말하지 않는 거죠?
노란새 뭐가? 내가? 난 늘 사실만을 말하지. 난 항상 공정하게 말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죄수를 쳐다보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죄수     나야 늘 노란새 자네 이야기만 기다리고 있지.
노란새 그러고 보니 까먹을 뻔 했네. 어제 유괴범이 어린아이를 하날 죽였고 강도가 일가족 5명을 몰살시켰고

             뭐 무슨 다리라더라··· 좌우지간 그게 끊어져 30명이 죽었다더군.

             거기에다 열차가 뒤집혀져 50명이 죽고 비행기가 추락해 100명이 죽고···

             이건 빅 뉴슨에 옆에 큰 섬에 전쟁이 나서 자그만치 1000명이 죽었다더군.

             어때, 쇼킹하지 않은가? 사실 자네도 그런 곳에 살았으면 벌써 사라졌을 목숨인데,

             그나마 여기 묶여 있으니까 지금껏 살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죄수     그런가... 어쨌든 고마워.
흰새     맙소사, 어째서 그런 얘기만을 말하는 거죠? 세상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얼마든지 있잖아요?
노란새 하지만 많은 새들이 자극적인 얘기를 더 좋아하는 걸 어쩌겠나. 이 죄수님을 포함해서 말일세.
흰새     그건 당신이 그런 식으로 길들여 놓았기 때문이예요!
노란새 뭐? 이봐 나는 얘기를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새야. 나한데는 어떠한 사심도 있을 수 없어.

              난 늘 사실만을 말할 뿐일세.
흰새     넘쳐나는 사실 중에 당신의 사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거죠.

             당신의 사실은 단지 새들의 관심을 끌어보기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요?
노란새 흥! 그런 어리석은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하는게 도리이지.

            (죄수를 바라보며) 이봐 내일부터는 자네를 달래주는 끔직한 얘기는 그만두기로 하겠네.

             대신 화끈하고 진한 얘기로 자네 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해주지.
죄수     그게 더 좋은 건가...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게나.
노란새 난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그럼 안녕!  (노란새는 숲 사이로 날아간다.)
죄수     참 재미있는 친구야!
흰새     기가 막히는 군요. 점점 당신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릴 거예요.

              늘 노란새가 와서 재미있는 얘기를 해줄 때까지 당신은 무얼하죠?

              왜 당신 스스로 행복해질려고 하지는 않는 거죠?
죄수      난 어짜피 죽을 목숨인데......
흰새      내가 아까 말한 그 사람들도 경우는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또 남들에게 그 행복을 나눠주려 하죠.

              난 새이기 때문에 그걸 할 수 없지만 당신은 그걸 할 수 있어요.
죄수      하지만 난 할 수 없어, 난 묶인 몸이거든.
흰새      ......


(멀리서 파란새가 날아온다.)


파란새 안녕하십니까? 나의 친구.
죄수     오! 파란새, 어서 와.
파란새 그런데 이분은 누구신지? 아 흰새님이시군요. 여행은 잘 다녀 오셨는지요?
흰새     당신이 이 사람에게 사랑을 얘기한 바로 그 파란샌가요?
파란새 예 그렇습니다만, 뭐가 잘못됐나요?
흰새     아니, 그냥 저도 당신의 말이 듣고 싶어서요.
파란새 아 그러시군요, 환영합니다. 함께 얘기를 나누도록 하죠.

             그런데 나의 친구분은 어제 저의 얘기를 잘 생각해 보셨습니까?
죄수     아니 도무지 무슨 얘긴지 통 모르겠어. 무슨 얘기를 했더라...
파란새 아직도 깨닫지를 못하시는군요. 당신은 비록 여기 매인 몸이고 곧 죽을 운명이라 할지라도,

             당신이 지금은 알지 못하는 초월적인 힘이 당신을 돕게 될거라는 겁니다.

             지금의 당신의 처지보다 행복한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런 걱정을 마시고 오로지 기쁨만을 간직하십시요.

             그리고 당신을 이곳에 묶은 사람들마저도 당신은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신의 마음이 편해 질 것입니다.
죄수     그런데 왜 무엇이 행복한 것인지는 말해 주지 않는 거지?
파란새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수     나야 여기 오기전 꿈속에서 했던대로 자유로운 몸으로 하루 세끼  밥을 먹고

             따뜻한 이불에서 잠을 자고 한나절을 했빛을 쬐며 보내는 거지.
파란새 아 그러십니까? 이제 당신의 원하는 바를 이루었습니다. 당신이 꾸준히 사랑하는 마음만을 가져 준다면요.
죄수     그 놈의 사랑, 사랑, 사랑. 대체 그 사랑이라는 게 뭐지?
파란새 남을 위하는 마음입니다.
죄수     그럼 나는?
파란새 당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초월적인 힘이 당신에게 복을 내릴겁니다.
죄수     그게 언제지?
파란새 그건 당신도 나도 모릅니다. 오로지 그 위대하신 힘만이 알고 있습니다.
죄수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고 왜 매일 일곱번씩 사랑합니다를 외치고 고개를 서른 세번 숙여야 하지?
파란새 그래야만 초월적인 힘이 기뻐하고 또 당신에게 복을 내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수     복은 뭐지?
파란새 하! 하! 원점으로 되돌아 왔군요.

             당신이 지금 자꾸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분의 힘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당신이 어느날 갑자기 묶이게 된 것도 다 따지고 보면 당신의 그런 사고 방식 탓입니다.

             그런 사악한 마음을 버리십시요. 그러면 당신이 어느날 갑자기 이렇게 묶이게 된 것처럼

             다시 어느 순간 당신은 당신의 집으로 옮겨져 있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더 행복한 곳으로 가게 될 수도 있을 테구요. 이런 얘기는 하면 안되겠지만...

             설사 제말이 틀린 것이라 한들 당신에게 무슨 해가 있겠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사랑하고 긍정하십시요.

             그길 만이 당신에게  진리입니다.
죄수     생각해보니 그렇군. 생각난 김에 그의식이나 치뤄야 겠군.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파란새 바로 그겁니다. 늘 쉬지 말고 반복하십시요. 그리고 항상 사랑하고 사는 것을 잊지 마시구요.

             그럼 저는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마디 더.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것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앞으로는 저에게도 존댓말을 쓰셔야 합니다.
죄수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초월적인 힘인가 뭔가에게 제 안부 좀 전해 주십시요.

             저는 행복이고 뭐고 다 필요없습니다. 여기만 빠져 나가면 되니까요. 아, 그런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몰아친다. 그러다가 빗줄기가 쏟아지고 거센 바람이 거대한 파도를 일으킨다. )


흰새     여보세요 파란새님! 지금 이 죄수님이 몹시 무서워서 떨고 있는데 

             그 초월적인 힘님께 이 비바람을 그칠것을 부탁할 수 없을까요?
파란새 걱정하지 마십시요. 시련후에 복이 찾아드는 법, 이건 길조임에 틀림없습니다.

             부디 사랑의 힘으로 견디어 내십시요. 그러면 당신은 승리자가 되실 겁니다.

             그럼 이만. (파란새는 숲사이로 날아 간다)
흰새     이제 우리 둘만 남았군요.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파도가 곧 이 절벽으로 들이닥칠 텐데 어쩌면 좋죠?
죄수     너는 왜 저 숲사이로 도망치지 않니?
흰새     당신을 혼자 두고 갈 순 없어요.
죄수     그건 왜지?
흰새     나에게는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이예요.

             내가 아무리 좋은 곳을 갈 수 있고 좋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처럼 의미있는 무언 가를 만들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인간이잖아요?
죄수     하지만 나는 이렇게 다죽게 생겼는데... 더군다나 나는 3일을 굶어 힘조차 없다구. 이젠 다 틀렸어!
흰새     아니예요, 인간은 3일을 굶었다고 해서 죽지는 않아요. 아니, 40일도 버틸 수 있어요.
죄수     뭐라구?
흰새     그런 경험을 가진 인간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부디 용기를......


(비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파도가 절벽을 엄습해온다.)


죄수     어서 내 옷깃 속으로 숨어!


(흰새는 죄수의 옷깃안으로 숨는다. 죄수는 비록 그런 파도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지만

 가슴으로 전해오는 흰새의 작은 떨림이 그에게 위한이 됨과 동시에 희망이 되었기에

 그는 고통속에서도 잔잔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날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온다. )


죄수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린다.)  어젯밤 폭풍우에 나는 정신을 잃었었지. 그렇다면 흰새는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나는 지금 살아있는 걸까... 아 눈을 떠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만약 죽었다면 나는 새로운 세상에 와 있을테고 살았다면 목숨을 부지한 셈이군.

             또 그 형벌에서 풀려나 옛날을 꿈속으로 되돌아 왔다면... 결국 모두 그 초월적인 힘의 뜻이군 그래.

             하지만 나는 눈을 뜨고 싶지 않군. 어찌됐건 가슴팍에 아무런 미동도 느껴지질 않는걸 보니

             흰새는 죽은 것 같은데... 비록 흰새가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를 위해 작은 둥지를 지어주어야 겠군.

             새들이 부리로 집을 짓 듯이......


(죄수는 순간 자신의 차가운 물이 뿌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순간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시야에는 흰 브라우스를 입은 어느 아리따운 처녀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미지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죄수      당신은 누구시죠? 그리고 제가 왜 여기에 누워있었던 겁니까?
미지      간밤을 여기서 지세우신것 같은데요. (웃음) 제가 이숲에 올라왔을 때 당신은 바로 이자리에 누워있었어요.

              정신을 잃고 말이예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비바람 속에서 기절한 사람치고는

              너무나 평온하게 잠을 자는것 같더군요.    
죄수      흰새는... 흰새는 어디 있죠.
미지      흰새라뇨? 아, 이맘때 쯤 찾아와 주던 그 철새 말이군요. 저도 그 흰새를 참 좋아해요.

              어릴적에 이 섬에서 그새와 처음 만난 이후로 매년 이맘때만 되면 그 철새를 맞이 하러 이 섬에 오곤하죠.

              저도 새 이름은 잘모르지만, 아무튼 그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당신은 안그런가요... 하지만 올해는 흰새가 오지 않을 모양인가 봐요.

              예년 같으면 벌써 둥지를 틀고 이섬을 맴돌고 있어야 하는데...

              설사 돌아온다고 해도 이미 그들의 둥지도, 제가 달아 놓은 새집도 모두 날려가 버렸기 때문에

              아마 그 새는 다른 섬으로 날아가 버릴 거예요.
죄수      우리가 그 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죠... 그저 막연히 기다리는 수밖에......
미지      우리가 다시 새장을 만들어 달아주면 어떨까요? 그러면 왔다가 다시 다른 섬을 떠나가는 일은 없을 게 아니예요.
죄수      하지만 우리에겐 못도 망치도 나무도 없는데......
미지      하긴 그렇군요. 어쩔 수가 없겠...
죄수      그래도 머리를 조금 쓴다면 좋은 수가 생길 것도 같은데...

             (미지를 바라보고 웃음을 짓는다. 미지 역시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나무조각을 모아 풀로 묶어 보도록 하죠. 한번도 해본적은 없지만, 만들어 보는 거예요.

              어때요. 같이 하지 않을래요?   
미지    (말없이 미소지으며 고개만 끄덕거린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이 섬에, 그리고 이 숲에 누워있게 된거죠?
죄수     글쎄요. 저도 잘... 어느날 갑자기 눈을 떠보니 이섬에 와있더군요.  하,하...
미지     이런 엉터리. 그런데 그 흰새가 과연 다시 올까요?
죄수     비록 그 새가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쩐지 당신이 저의 흰새가 될 거 같군요.
미지     (살포시 미소지으며) 그렇다면 그 새의 이름은 미지라고 해야겠네요.
죄수     그럼 미지의 흰새라고 하는게 좋겠군요. 어짜피 우리의 흰새도 未知이니...

'내가 쓰는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작시] 무제 (가제:무無-벽壁-순수純粹)  (0) 2012.03.21
[창작시] 시인과 도적  (0) 2011.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