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개국 당시의 모습 (사진 서울지방우정청 제공)
2011년 11월 1일 오전 8시 10분 드디어 서울우편집중국의 소포계 작업이 완료되었다.
이제는 이곳에서는 더이상 서울시민을 위한 소포 업무를 하지 않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나의 서울우편집중국 생활도 막을 내리는 순간~ 아! 끝났구나.
지긋지긋한 소포물과의 사투가 끝났다는 해방감과 더불어 밀려오는 아쉬움이란...
지난 40여 개월 동안 이곳에서 일하며 나는 돈도 벌었고 공부도 했고 사람들도 사귀었고
때로는 웃고, 울고, 다투고,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운동도 하고... 아무튼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08년 3월 19일 서울우편집중국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을 나는 또렸이 기억한다.
아버지가 또 당뇨로 쓰러지시고 더이상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우연히 선택한 곳.
나에게 이무렵은 인생의 방황기이기도 했고 경제적으로도 곤궁했으며 부질없는 공부도 해야 했다.
그리고 하루 8시간 오로지 서서 광화문,용산,관악,마포,중앙,동작 우체국의 소포들을 처리하였다.
나는 처음 우편집중국이 있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했었다. 막연히 우체국에서 일하고 싶었다.
우편물이 정해진 주소로 정확히 찾아가듯이 세상사도 그 가야할 곳으로, 방향으로 흘러 가길 바랬다.
내 나이 20대 중반 무렵, 나에게도 꿈이 있었고 가야할 길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돌아와야 할 정당한 댓가가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서야할 자리와 내가 누려야 할 영예는 늘 누군가가 가로채 버리고 있다고 느꼈다.
단단한 철로처럼 곧은 길을 철마처럼 달리길 바랬지만, 나는 늘 궤도를 벗어나 있었다.
(사진 cafe.daum.net/GGBC27 제공)
이제 마흔이 넘어서서야 비로서 또다시 본 궤도를 힘겹게 지날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 나의 철로는 다른 차량들의 통행으로 닳아 버렸고, 일부는 손상되고 복구조차 불가능하다.
모든 손님들의 관심으로 멀어진 낡은 철마는 제속도도 내지 못하면서 삐거덕 거리며 궤도를 달린다.
그러나 그 철마에 다시 용기라는 연료를 집어 넣어 준 곳이 바로 이 서울우편집중국이다.
원형작업장은 수작업장으로 내가 가장 많이 일한 곳이다. (사진 서울지방우정청 제공)
슈트는 자동 분류된 우편물을 처리하는 곳이다. (사진 서울지방우정청 제공)
서울우편집중국의 하루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 8시간 오로지 서서 2000여개 정도의 소포물을 처리했다.
사방팔방에는 감시 카메라가 작동을 하며, 관리자들의 보이는 평가와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 경쟁심 속에서 일을 한다.
때로는 소포를 잘못 구분해서 엉뚱한 지역으로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소포를 파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99퍼센트 이상의 소포물은 정확한 곳을 향해 안전히 보냈다고 자부한다.
처음에는 엉성한 일처리로 많은 이들이 질책을 받기도 했지만, 하면 할수록 일이라는 것은 느는 법.
1초도 안되는 시간동안 주소를 읽어내고 가야할 곳으로 정확히 구분을 해냈다. 망설임이란 없다.
살아오는 동안 사소한 일조차도 내가 하는 것이라면 늘 못미더웟던 내 자신이 신속정확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흐릿한 안경 너머로 바라보던 내가 현미경이라는 정밀한 도구를 달게 된 셈이다.
우연히 일치인지도 모르지만, 늘지 않던 바둑 실력도 어느덧 아마 3단에 다다랐다.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세상을 보다 세밀하게 볼수 있게 된 것 같다.
용산 국제업무 지구 조감도 (사진 드림허브 제공)
용산 국제업무 지구 개발지의 중심에는 서울우편집중국이 서있다.
2011년 11월 1일 자로 모든 업무는 종료되어졌고, 작업장은 사실상 폐쇄되었다.
그리고 이제 곧 건물은 해체되어 용산의 랜드마크가 될 거대한 빌딩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1980년 우편물이 급증하면서 탄생하게 된 서울우편집중국. 최초의 기계화된 전문우편처리장소로써
한국 물류사에 획기적인 장을 열었던 곳이며 철도와 연계하여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던 곳이라고 한다.
1990년에는 거대한 4층짜리(실제 높이는 아파트 10층이상이다) 건물로 탈바꿈하여
서울시민들의 소포를 전국으로 보내고 전국의 소포를 서울시민들에게로 날라 주었던 곳.
동서울 우편 물류센터가 들어서면서 그 역할과 위상은 상당히 축소되어 졌지만,
우정사업본부 내에서는 상당히 상징성이 높은 작업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서울우편집중국 소포계 업무 마지막 날.
대부분의 직원들이 전근을 한 상태에서 무려 14시간의 사투끝에 2만9천 여통의 소포를 처리하였다.
그리고 그 소수의 인원 가운데에는 내가 있었다.
내가 처리한 소포들은 전국에서 올라온 것으로 서울의 네곳(관악,동작,마포,종로)으로 정확히 보내어 졌을 것이다.
마지막 우편물들이 정확히 자신들이 가야할 곳을 찾아가듯이 내 인생의 여정도 정확히 귀결되어 지기를 바랄 뿐이다.
서울우편집중국 정문의 모습 (사진 서울지방우정청 제공)
서울우편집중국의 현재를 근처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 서울지방우정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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